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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평화신문] [유수일 주교 선종] 군 복음화와 가난·겸손·기도의 길 걸어간 작은형제 주교
작성자 홍보국 작성일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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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일 주교는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가난과 겸손, 기도의 삶으로 교회에 헌신한 참 목자였다. 제3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뒤에는 국내외 군사목을 위한 곳이라면 어디든 사목 방문하며 따뜻한 카리스마를 통해 군 복음화에 헌신했다.



작은 형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유 주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이었지만, 어린 시절 남 돕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쳤다.

유 주교는 젊은 시절 친구의 소개로 찾은 개신교 선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접하곤 개신교 전도사가 될 뻔했다. 그러다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접한 후 하느님 신비와 섭리에 빠져들게 됐고, 이후 작은형제회 수도자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2년 주문진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이듬해 그토록 원하던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첫 서원 전 수도생활의 어려움도 마주했다. 수련장에게 유독 꾸중을 많이 들어 집으로 갈 준비까지 했었다. 다행히 첫 서원을 발하는 허락이 떨어졌고, 유 주교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하느님 자비가 얼마나 크셨는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유 주교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체중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다. 추위를 많이 타 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지내야 할 정도였지만, 수도회 형제들이 많지 않던 때 주요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다. 특히 관구장이 된 뒤 형제들 양성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여러 형제를 유학 보내 현재 작은형제회가 교회 안에 영성과 학문에 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무척이나 검소했던 유 주교는 수도 사제 시절 몇 번이나 기운 양말을 신었고, 낡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다. 춥고 더울 때에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통에 신자들이 택시비라도 쥐여주면 “걷는 게 나의 건강 비결”이라며 늘 사양했다.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는 “제가 작은형제로 불림을 받았을 당시 관구장이셨던 주교님은 면담 자리에서 ‘하느님은 형제가 행복해지길 원하신다. 그 길을 따라가라’고 말씀하셨다”며 “주교님께서는 모든 이가 하느님 안에서 행복해지길 바라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꼰벤뚜알 작은형제회 윤종일 신부도 “후배로서 학생 때부터 유 주교님께 수도자의 길을 배웠다”며 “가난과 작음을 몸소 실천한 ‘작은 거인’이셨다. 프란치스칸 수도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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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목에 헌신. 코로나 19로 어려움 겪기도

유 주교는 군종교구장 착좌 후 군 영세자 수를 늘리는 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5년까지 군종교구에서만 매년 평균 2만 4000여 명의 영세자가 나왔고, 95%가 병사들이었다. 전국 영세자의 20% 이상을 군종교구가 차지했다.

하지만 젊은층이 종교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군종교구 영세자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군종교구 영세자 수는 3000여 명에 그칠 정도로 심각해졌다. 유 주교는 2020년 10월 매년 발표하던 군인 주일 담화 대신 호소문을 발표하고 “군종신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사목자들의 역할을 독려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이듬해 군종교구 영세자 수가 플러스로 전환됐다.

한국의 작은형제로서 첫 주교품을 받은 유 주교는 이전 교구장들과 달리 군대 경험도, 군종 신부로서의 경험도 없었지만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며’ 군종교구를 위해 헌신한 후 교구장에서 은퇴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군종교구장 퇴임 후 본 소속인 작은형제회로 돌아간 유 주교는 예루살렘 성지 관구와 로마 등을 오가다 암이 발병돼 1년 8개월여간 투병했다. 유 주교는 투병 중에도 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찾았던 것이 수도복이었다. 유 주교를 간호하고 곁에선 본 여러 형제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주교님은 마지막까지 참으로 겸손한 작은 형제였고, 기도하는 수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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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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