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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모든 이를 섬기는 삶”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군종교구 교구민 여러분, 저는 금년의 사목표어를 “모든 이를 섬기는 삶”으로 정했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군의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묵상하고 실천에 옮기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복음화’는 세상에 복음을 전해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어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일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닮아감에 있어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당하시기 전날 밤, 당신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던 중,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요한 13,4-5 참조)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4-17) 이 행동과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사랑에 기초한 섬김’이 인간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때 묻고 냄새나는 발을 고개 숙여 손수 닦아주시는 이 섬김의 자세를 통해, 당신의 제자들이,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섬김의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최후만찬 식사 때에,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자세’에 이어서,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말씀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셨는데, 이 역시 ‘섬김의 자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이 새 계명이 사실상 ‘섬김의 삶’에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친절과 겸손과 배려의 덕들이 서로 사랑하는 ‘상호 사랑’ 곧 형제애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당신 친히 이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에서 실천됩니다.

‘섬기는 삶’은 마음의 따뜻함과 기꺼이 내어주는 의미를 지닌 ‘친절’과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주는 ‘겸손’과 상대방의 사정과 편의와 욕망을 고려해주는 ‘배려’에 기초하며, 상호 사랑인 형제애가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최후를 맞으시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던 중 한 가지 슬픈 일이 발생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신 제자인 요한 사도와 그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의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다가와서는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라고 높은 자리 청탁을 한 일입니다. 요한 사도와 형제인 야고보 사도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주님께는 슬픔과 실망감을 느끼게 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요한 사도와 야고보 사도 그리고 이 두 제자의 어머니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마음에 잠재해 있는 높아지려는 욕망을 이해하시면서, 다만 그 욕망을 성취하는 참된 길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5-28) 주님의 이 말씀은 단지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고 세상의 만민이 마음 깊이 새기면서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높아지려는 욕망이 성취될 때,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고 심지어는 횡포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삶’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섬김의 삶’은 나이, 직위, 학력, 재산, 성격, 출생지, 민족, 피부색 등 모든 차이를 초월하게 해 줍니다. 내가 나이 많아도 젊은이들을 돌보아주는 형태로 섬길 수 있고, 내가 고위직에 있다 해도 낮은 직책의 사람들을 섬길 수 있고, 내가 고학력자라 해도 배우지 못한 이들을 섬길 수 있고, 민족과 피부가 달라도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못 가졌고 낮은 자리 어려운 삶의 여건에 처한 사람도 열등감이나 불평 없이 겸손히 그리고 기쁘게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못 가진 이들의 이 자세에 하느님께서 더욱 큰 축복을 내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천하신 사랑을 본받는다면, 누구에게든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섬김 받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할 때에, 적극적인 섬김의 자세를 보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이 자세를 갖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언젠가 상대방의 마음이 바뀔 수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기꺼이 도와주고 돌보아주는 것이 섬김의 아름다움을 증거 하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누구에게 가장 고마운 마음을 가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나를 사랑으로 돌보아준 이, 곧 나에게 섬김의 봉사를 해 준 사람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면서 ‘상호 사랑’에 기초한, 곧 형제애의 친절하고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섬김의 삶’을 모든 이에게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어려운 삶을 기꺼이 실천할 힘을 성령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이가 사랑과 존경을 받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저는 금년의 사목표어인 “모든 이를 섬기는 삶”과 관련하여 군종 사목에 직접 임하는 군종사제들과 군종교구의 모든 교우에게 몇 가지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1. 군종사제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이 사목표어와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 군종 사목의 목자이신 군종사제들은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모범을 보이면서, 장병들, 간부들, 지휘관들 그리고 모든 군 가족들을 ‘돌보고 위해주는’ 삶을, 특히 영적으로 돌보아주는 삶을 더욱 충실히 해주시길 겸손히 요청합니다. 영적인 돌봄에서는 무엇보다 군 신자들에 대한 ‘계속 교육’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 교육의 방법으로 기도생활로 인도, 성경공부 촉진, 성체성사를 더 가까이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 본당 공동체 안에서의 형제적 친교 촉진에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신자들이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덕에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장병들에게 우선적 관심을 두면서, 그들의 아버지요, 형님이요, 친구요, 상담자로서 친절히 그리고 가까이 대하시고, 특히 오지나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보다 자주 찾아주시어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길 요청합니다. 이것이 ‘현장을 중심으로 하고, 장병들에게 보다 가까이 가라’는 군 당국의 요청에도 응답하는 길이 됩니다. 이와 함께 하느님에 대해 또 영적인 데에 관심을 두는 장병들을 교리반으로 친절히 인도하여 주시길 요청합니다. 정성을 쏟는 만큼 그리고 힘을 쏟는 만큼 결실은 더 많고 더 크게 됩니다.

- 군종사제들은 군 장교로서 모든 군인들을 계급과 종교와 출신을 초월하여, 존경하고 예를 갖추어 주고 도움을 주어 ‘섬김의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주님의 말씀을 유념하도록 합시다. 내가 상대방을 높여줄 때 상대방도 나를 높여주고,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때 상대방도 나에게 도움을 주며, 많은 경우 내가 높여준 이상으로 그리고 도움을 준 이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보답을 받습니다. 물론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것을 줄 때 상대방도 나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만일 상대방이 주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그를 대신하여 주십니다.


2. 신자들 편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과 말씀으로 가르치신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을 성실히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든 ‘상호 사랑’ 곧 형제애가 지닌 친절과 겸손과 배려의 자세를 늘 실천에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섬김의 삶이 여러분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님께서 ‘최후심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를 묵상하면서 누구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섬기는 삶을 추구하시길 요청 드립니다. 저는 우리 군 신자들이 군에서만이 아니고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주심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대림 제1주일에

교구장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