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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톨릭신문] 고(故) 유수일 주교, “가난한 사람 위해 일하라” 유언 남기고 떠나 | ||
작성자 | 홍보국 | 작성일 | 2025-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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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당일부터 빈소 조문 행렬 줄이어…겸손한 모습으로 교우 살뜰히 챙긴 모습 회고 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5월 28일 선종했다. 선종 직후 이틀간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회고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30일 봉헌된 장례미사에서는 15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해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빈소·장례미사 모습과 함께 소탈한 웃음과 겸손함으로 작은형제회와 군종교구를 이끌어 온 고인의 삶과 신앙을 돌아본다.
빈소·장례미사 이모저모 ◎... 유수일 주교의 선종 당일인 5월 28일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성당에 마련된 빈소에는 오후 6시부터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가족 수도회 사제·수도자들과 재속회원 등 조문객들은 제대 앞에 수도복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누워 있는 유 주교를 바라보고 기도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29일 오후 6시에는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와 교구 사제단이 조문하고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이밖에도 서울대교구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 제2대 군종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등이 빈소를 찾았다. ◎...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고인을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빈소에서 위령 미사를 주례한 작은형제회 호명환(가롤로) 신부는 “유 주교님은 소박하고 정이 많으셨다”며 “주교로 임명되시고 새벽에 전화를 주시더니 ‘난 그래도 끝까지 작은형제회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생활성가팀 제이팸(J-FAM)의 장환진(요한) 씨는 “유 주교님의 따뜻한 성품을 생각하며 작곡한 노래 ‘하느님의 사랑’을 주교님께서 자주 즐겨 들으신다고 응원해주신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이어 “2010년 군종교구장 임명 후 첫 사목 방문지였던 파주에서 군종병들과 미사를 드릴 때의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군종교구 국군중앙주교좌본당 주일학교 교감 유미애(모니카) 씨는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항상 안부를 물어봤다”며 유 주교의 생전을 회고했다. 이어 “주교라는 직함이 무색할 만큼 늘 겸손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교우들을 사랑으로 챙기셨다”며 “아프셨을 때도 신자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시려고 했다”고 말했다. - 중략 -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굴하지 않고 ‘군 복음화’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부터 신병까지 군종교구 식구 모두를 똑같은 형제·자매로 대하겠습니다.” 2010년 한국교회 두 번째 수도회 출신 주교이자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된 유 주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구장 재임 시절 군은 ‘국방개혁’에 한창이었다. 출산율 저하와 그에 따른 입대 장병 감소, 부대 통폐합 등 군 조직에 큰 변화가 일며 군사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혜롭게 대처해 과도기를 극복했다. 유 주교는 군 복음화에도 힘썼다. 일관되게 성경 말씀에 중심을 둔 신앙을 중시했고, 신자 군인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르는 군 장병·가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군종후원회를 활성화하고 군 장병들을 직접 만나며 발로 뛰었다. 특히 ‘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주교는 “4~5주 짧은 예비신자 교리를 거쳐 세례를 줘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세례는 ‘기회’가 있을 때 줘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군대에 온 젊은 청년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한국교회 청년 복음화에 큰 역할을 한다는 판단이었다. 2019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성당’을 봉헌한 것은 유 주교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성당 봉헌까지 한국교회와 국군, 미군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JSA 성당은 지금까지도 군사분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이다. 코로나19 팬데믹도 크나큰 도전이었다. 단체로 생활하는 군 특성상 교구 전체가 신앙생활에 위기를 맞았지만, 유 주교는 교구 차원에서 발 빠르게 사순·부활 특강과 대축일 미사 영상 등을 제작하도록 이끌며 교구민들이 팬데믹을 극복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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